윤수가 적적하면 나가보라고 한 이유를 알 게 되었다.부산일수
자연만이 충만한 이 공간.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부산일수
자연은 감정을 발산하지 않고, 감정을 이해해달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부산일수
햇빛이 비추면 더워지고, 바람이 불면 시원해지고, 비가 오면 싸늘해지고, 눈이 오면 추워질 뿐이다.부산일수
단순하면서도 알아듣기 쉬운 자연의 언어. 할머니는 오랜만에 웃음을 지었다.부산일수
목줄을 길게 풀어주자 강어지가 신이나 앞으로 뛰어나갔다.부산일수
발발 뛰면서 이곳저곳에 영역을 표시하는 강아지. 할머니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불연 듯 목뒤를 서늘하게 만드는 감각에 고개를 돌렸다.부산일수
.검은 두루마기에 검은 갓을 쓴 악마가 그곳에 서있었다.부산일수
이제는 볼 일 없다는 양반이 여긴 뭐하려고 왔나요? 혹 내 명줄이 다한 건가요?오랜만에 보는 건데 인사도 없이 그리 박하게 굴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할머니는 악마의 얼굴을 보았다.부산일수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 오십대, 육십대, 남자, 여자. 모든 것이 담겨있는 악마의 얼굴이다.부산일수
제가 떠난 뒤로 인생은 재미있으셨습니까?악마가 물었다.부산일수
한 번 맞춰 보세요.할머니는 강아지를 데려와 품에 안았다.부산일수
강아지는 악마가 있는 쪽으로 이빨을 세우며 으르르 짖었다.부산일수
견안은 사자를 볼 수 있어서 여간 귀찮은 게 아니지요.악마가 명주실로 엮은 누런 종이다발을 꺼내 손가락으로 뭔가를 썼다.부산일수
그러자 강아지가 픽하고 쓰러졌다.부산일수
죽은 것이다.부산일수
뭐하러 온 건가요?할머니는 죽은 강아지를 풀숲에다 버리며 물었다.부산일수
일이 있어 왔습니다.부산일수
늙은 나에게?그럴 리가요. 우리의 계약은 예전에 끝났으니 더 이상 볼 일이 없죠. 이번에 온 이유는 당신 손자 때문입니다.부산일수
대충 짐작하셨을 텐데요?.악마의 말 대로였다.부산일수
할머니는 짐작을 하고 있었다.부산일수
윤수가 나와 똑같다는 걸 안 순간 악마가 찾아올 거라는 걸 알았다.부산일수
한때 세상의 아름다움을 엿보았던 당신이 다시 무채색 세상으로 돌아왔을 때의 감상을 길게 듣고 싶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없군요.당신은 언제나 바쁜 사람이었죠.지금도 물론 바쁩니다.부산일수